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자본주의의 진실
    경제 이야기 2020. 8. 3. 09:54

    자본주의의 진실

     

    자유 기업인가 자본주의인가?


    자본주의와 자유기업은 종종 동의어로 여겨진다. 사실, 그것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특징이 겹치는 뚜렷한 용어들이다. 완전한 자유기업 없이 자본주의 경제를 가질 수 있고, 자본주의 없이 자유시장을 가질 수 있다.

    민간인이 생산의 요소를 통제하는 한 어떤 경제도 자본주의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여전히 정부법에 의해 규제될 수 있고, 자본주의 노력의 이익은 여전히 중과세를 부과할 수 있다.

    '자유 기업'은 강압적인 정부 영향에서 자유로운 경제 교류를 의미하는 것으로 대략 이해할 수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개인이 모든 재산권을 공통으로 보유하는 제도를 구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사유재산은 정부의 권한 없이 자발적으로 공동체로 취급될 수 있지만, 사유재산권은 여전히 자유로운 기업체제에 존재한다.

    많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이 이러한 배열의 요소들을 가지고 존재했고, 더 넓은 자본주의 경제 가족 내에서 파트너십이나 기업 같은 클럽, 협동조합, 그리고 공동 주식 사업 회사들은 모두 공동 재산 기관의 예들이다.

    자본에서 축적, 소유, 이익을 얻는 것이 자본주의의 중심원리라면 국가강요로부터의 자유는 자유기업의 중심원리다.

     

     

    봉건제도는 자본주의의 뿌리


    자본주의는 유럽의 봉건주의로부터 발전했다. 12세기까지 유럽 인구의 5% 미만이 도시에 살았다. 숙련된 노동자들은 도시에 살았지만 실제 임금보다는 봉건 영주들로부터 생계를 유지했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지주 귀족들을 위한 농노였다. 그러나, 중세 말기에 이르러 도시주의가 부상하고, 도시는 산업과 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경제적으로 점점 더 중요해진다.

    무역업자들이 제시한 진정한 임금의 등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대가로 생계보다는 돈을 벌 수 있는 도시로 이주하도록 격려했다. 직장에 투입되어야 했던 가족들의 추가 아들과 딸들은 무역도시에서 새로운 수입원을 찾을 수 있었다. 아동 노동은 농노가 농촌 생활의 일부였던 것만큼이나 마을 경제 발전의 한 부분이었다.

     

     

    봉건주의를 대체한 상업주의


    상업주의는 점차 서유럽의 봉건적 경제체제를 대체했고 16~18세기에는 상업의 1차 경제체제가 되었다. 상업주의는 도시 간의 무역에서 시작되었지만, 반드시 경쟁적인 무역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각 마을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요에 의해 서서히 동질화된 서로 다른 제품과 서비스를 가지고 있었다.

    상품 동질화 이후, 교역은 읍에서 읍으로, 군에서 군으로, 도에서 도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 대 국가 등 보다 광범위하고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너무 많은 나라들이 무역을 위해 비슷한 상품을 제공하고 있을 때, 무역은 끊임없이 전쟁에 휘말리는 대륙에서 강한 민족주의 감정으로 날카로워진 경쟁 우위를 점했다.

    식민주의는 상업주의와 함께 번창했지만, 정착지로 세계의 씨를 뿌리는 국가들은 무역을 늘리려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식민지는 봉건주의로 얼룩진 경제체제로 설치되었는데, 그들의 생필품은 조국으로 돌아가고, 북아메리카에 있는 영국 식민지의 경우 완제품을 다른 나라와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사이비 통화로 재구매하도록 강요되었다.

    상업주의가 발전과 변화의 힘이 아니라 국가 간 무역 불균형을 조성하고 선진화를 가로막고 있는 퇴행적 시스템임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담 스미스였다. 자유시장에 대한 그의 생각은 세계를 자본주의에 개방했다.

     

     

    산업자본주의의 성장


    산업혁명이 곧 서구 세계를 뒤흔들 정도의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했기 때문에 스미스의 생각은 시기적절했다. 식민주의의 (종종 문자 그대로) 금광은 생산의 확대와 기계화를 추진한 국내 산업의 생산품에 대한 새로운 부와 새로운 수요를 가져왔다. 기술이 앞서고 더 이상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수로나 풍차 근처에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게 되자, 산업가들은 이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준비된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 도시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산업계의 거물들은 그들의 생애에 그들의 부를 축적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는데, 종종 지주 귀족들과 많은 돈을 빌려주는/은행을 하는 가족들 모두를 앞질렀다. 역사상 처음으로, 서민들은 부자가 되고자 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새로운 자금 군중은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공장을 더 많이 지었고, 또한 사람들이 더 많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을 더 많이 생산했다.

    이 기간 동안 '소두'를 뜻하는 라틴어 '자본주의'에서 유래한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1850년 프랑스의 사회주의자인 루이 블랑(Louis Blanc)이 처음 사용하게 된 것으로, 공유 소유권보다는 개인에 의한 산업생산수단의 배타적 소유 체제를 의미한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